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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배우자
왜? 제2 민주노조운동이며, 다시 전태일열사 정신 배우기인가! 인간에 대한 사랑 -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정의가 실현되는 노동해방의 사상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과 함께 분신으로 산화해간지 어언 39년째 되는 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열사에게 충격을 받아 무의식의 잠에서 깨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를 제공했다. 전태일 열사는 갔지만 그가 이루고저 했던 세상을 향해 오늘도 공장에서, 길거리에서, 천막에서, 옥상에서, 굴뚝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알량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영혼에 가장 큰 깨우침을 준 사람이 마르크스라면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철학과 사상, 삶과 투쟁에 가장 확실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2009년 오늘까지도 전태일 열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그러면 우리도 열사께서 하고 많은 책 중에 왜 근로기준법을 화형식하고, 자신의 몸에도 불을 붙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열사의 분신을 통해 이 사회에 폭로하고 고발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며, 열사는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 노동자들에게 이 땅의 민중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1)자본주의가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굴레 '근로기준법' 화형식 전태일열사는 어린소녀들과 함께 공장생활을 하며 그들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곤경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실천투쟁을 했다. 조직도 결성하여 저항도 하고, 작업현장의 처참하고 참혹한 실체를 직접 조사하여 개선요구와 고소도 해보았으나 국가에서 돌아오는 것은 폭력뿐이었다. 어린 여공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정작 본인은 버스비가 없어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퇴근하며,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을 것이다. 목숨을 내놓겠다는 어려운 결단을 피해보고 싶었지만 이미 알아버린 노동자들의 처참한 고통과 착취를 어찌할 것인가. 혼자서 해결할 힘이 없을 때 가장 강력한 방법을 선택하는 전략적 행동의 하나로, 70년 엄혹한 군사 독재시절을 관통할 수 있는 충격요법으로 분신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근로기준법'인가. 전태일 열사는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상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처지와 현실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느꼈다. 함께 부딪히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봉재공장 어린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을 어떻게, 무엇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학습하고, 실천하며, 행동하는 지도자가 되어갔다. 전태일 열사의 사람에 대한 사랑, 인간중심의 사상을 이미 노동자들 사이에 아름아름 알려졌으며, 그가 분신이후 찾아온 ‘어린 여공들이 "그 오빠가 죽었느냐"며 울었다’고 이소선 어머니의 증언이 있기에, 그의 진정성을 사람과 사람들 사이로, 공장과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역사를 넘어 오늘까지 열사의 정신은 노동자들에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휴머니스트 전태일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외침과 함께 분신을 했다.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억압과 착취의 참혹한 노동현장을 세상에 알리고, 노동자들의 근로기준과 처우, 보상의 근간을 이루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 사업주들의 불법경영을 비호하는 정부기관들은 국민 보호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져버리니 오히려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만행을 고발한 것이다. 열사의 항거는 70년대 30인이상 적용되던 근로기준법을 16인이상 사업장으로 완화되어, 법의 사각지대에서 노예노동 상태의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결과와 효력이 확장되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수백만명을 살려낸 살신성인의 정신은 현실 노동운동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나침반이 되고 있다. 2)국가의 야만과 폭력에 분신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촉구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통해 권리 위에서 잠자고 있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깨우쳤다. 억압과 착취, 야만적인 인간에 대한 약탈에 대해 지식인들과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친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태일 열사는 이 땅의 지식인과 노동자들에게 국가의 폭력에 저항할 것을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분신으로 절박하게 촉구했다. 국가(정책)란 무엇인가? 국민(인민,민중)들을 부터 위임된 권력을 집행하는 통치기구이다. 즉 국가는 국민들의 요구와 뜻에 맞춰 공정하게 권력을 행사해야 하며, 민주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을 집행해야 한다. 국가가 다수의 의사에 따라 다수의 행복을 위해 권력과 법을 집행하지 않고 소수의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막아주지 못하거나 본분을 망각하고 국가가 국민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국민들에게 곤궁과 고통을 전가하며, 국가의 권위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면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원인무효로 되돌려야 한다. 2500년전 공자는 군군신신(君君臣臣)을 가르쳤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며, 신하도 신하다워야 한다는 말로써 유교의 도덕정치의 규율을 이야기한 것 뿐만 아니라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갈아 치워야 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한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국가가 국가답지 못하면 바꿔야 한다"는 혁명의 논리가 성립된다. 맹자는 “백성에게 폭정을 일삼는 임금은 죽여도 된다”며 혁명의 정당성을 부여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근거를 제공하는 맹자는 제나라 선왕이 "탕왕이 폭군 주왕을 내쫒고 은나라를 세운 것이나, 무왕이 주왕을 내쫒고 주나라를 세운 것이 옳은 일이냐"고 묻자 "인을 해치는 자는 흉포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학하다고 하고, 흉포하고 잔학한 인간을 일개 범부(凡夫)라고 한다. 일개 범부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백성에게 폭정을 일삼는 임금은 죽여도 된다’고 그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흉포하고 잔학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현대국가의 선출된 권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유교정신을 적극 이용하며 부패하고 타락한 고려시대 귀족정치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민본정치를 펼친 이가 삼봉 정도전이다. 조선경국대전에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라고 ‘인간중심의 사상을 분명히 하는 조선’임을 선포하는 기틀도 정도전이 마련했다. 정도전의 민본주의는 공자의 인본주의와 맹자의 위민사상을 계승한 것이며 "권력의 기원을 백성과 통치자의 계약이다"라고 관점을 분명히 했다. 백성이 위탁한 권력을 백성을 위해 행사하지 않으면 계약의 위반이며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분명히 하면서 스스로 고려정권을 무너뜨리고 조선건국에 대한 정당화와 대의명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서양의 '사회계약설'보다 300여년 앞선 사상으로 확인되고 있다. 토마스 홉스도 "통치자의 권력은 인민이 부여한 것이다"이며, 신의에 의한 계약관계로 보고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 한다고 한 계약 목적을 저버린 통치자에게 인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음을 밝혔고, 이를 계승한 존 로크 또한 "통치자의 권리가 인민으로 부터 신탁 받은 것임을 명확히" 했다. 즉 인민은 통치자가 선의의 관리임무를 벗어나 폭정을 가한다면 인민은 통치자의 폭정에서 벗어날 권리, 그 폭정을 예방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근대 자유민주주의 정치원리가, 이 땅 조선에도 600년 전에 그 정신이 만들어져 역사의 현장을 민중과 함께 장식하고 있다. 전태일열사, 억압과 착취를 비호하는 국가의 폭력을 분신으로 폭로하며 저항 촉구 전태일 열사도 참혹한 노동환경에서, 억압과 착취에서 신음하는 이 땅의 죽어있는 노동자들에게 영혼을 불어 넣었고, 잠에서 깨어나 의식을 갖추어 국가의 폭력에 국민적인 저항을 촉구하며 산화해 갔다. 역사는 근로기준법을 뛰어넘어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과 노동3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단결 투쟁의 길만이 노동자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밝혔다. 노동자들에게 권력의 독재와 독점은 민주공리속의 위임된 권력에 대한 계약 위반이며, 가진 자들의, 소수 지배자들의 횡포를 막아내지 못하는 국가권력, 오히려 법집행을 빙자하여 국가적인 폭력을 자행하고 정부(국가)는 신의의 원칙을 위반했기에 원인무효임을 온 몸을 불사르며 깨우쳐줬다. 노동조합의 길, 노동운동의 방향과 좌표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한 노동자권력만이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올바로 사수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노동자가 단결하면 국가의 폭력을 예방할 정치적 힘(권력)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줬다. 한국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노선은 '정치적 저항‘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 전태일 열사의 '근로기준법 화형식'이며, 노동자들이여 깨어나라! 분노하라! 저항하라! 새로운 사회로 나가라!고 명령을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권리의식을 깨우치고,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며 정치의식을 깨우치며, 억압과 착취가 없는 나라에 대한 상상력과 이상을 현실화 시키면서 계급의식을 깨달아,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나가는 똑똑한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이 열사가 남긴 유혼이다.
3) 노동운동의 최종 목적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 전태일 열사는 휴머니스트이다. 거창하게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체제로 사회벽혁 목표로 세우지도, 주장하지도 않았다. 단지 사람에 대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을 완벽하게 실천하기 위해 그는 온몸을 던지는 소신공양을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현실 자본주의로는 결코 달성 할 수 없음을 웅변해주는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의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간절한 소망이 잠든 세상을 깨웠다. 우리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현실 노동운동의 위기와 고립에 대해 스스로 반문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 노동운동이고 새로운 사회로 대중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개인에 대한 보상이며 출세이고 사리사욕을 앞세우면서 정파를 만들어 사리사욕에 갇힌 파당행위를 운동처럼 위장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무지한 노동자들에 대한 우월한 지식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요구에 동원되는 도구와 대상으로 삼는 계몽주의, 엘리트주위에 빠져 또 다른 지배자로 군림하려고 해오지는 않았는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왜곡된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에게 재앙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성인(聖人)들은 하나같이 나를 알고 사랑하는 것이 남을 사랑하는 법임을 가르쳐 유명한 성인(聖人)들은 하나같이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됨을 가르친다. 나의 해방이 인간의 해방이며, 인간의 해방이 곧 세상의 해방임을 설파한 이가 동양의 공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남을 배려하고, 나를 배려는 마음이며, 수양의 목표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나를 다스리는 것을 최고로 삼았다. 따라서 항상 깨어 경계하는 마음으로 일상의 안일과 타성을 거부한 채, 항상 자신의 현재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수양하고 나를 다스릴 것을 가르쳤다. 공자의 인(仁)은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만민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우리에게 가장 흔하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교훈을 주고 있다. 석가모니는 태어나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사방을 향해 외쳤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에서 내가(我) 가장 존귀한 존재임을 설파하여 내가 곧 부처이며,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인간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선포한 것은 당시 전혀 새로운 철학이며, 불교의 중요한 사상이다. 예수 자신도 쫒기는 신세이면서 갈릴리아 호수에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5천명을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기도하여 이에 감동한 이들이 숨긴 음식을 함께 갈라먹게 만들어 배불리 먹여 살린 사건은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으로 불리며 유명해졌다.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는 인간들에게 남에게서 문제를 찾지 말고 나 자신부터 이해하며 용서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줄 알게 됨을 깨우쳐 주었다. 징키즈칸 또한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키즈칸이 되었다”는 어록에서 자기관리가 기본이요 기초라는 가르침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기름진 음식에 기와집을 짓고 살 때 망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통해 후손들에게 자신의 본분을 잊는 순간 인민들에 의해 타도될 것임을 경계하도록 하여 나 자신의 중요성을 가장 잘 깨닫고 있었다. 손자병법의 모공편에서 조차 지피기기 백전불태, 불지피불지기 매전필패(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라 해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지만,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고 가르치며 나를 먼저 파악이 전쟁의 기본이라 하지 않는가.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자본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걸 밝힌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회과학을 인간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실천적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에 빛을 던져주는 공부'가 되어야한다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을 자신의 희망과 목표로 삼았던 마르크스는 "오늘날의 빈궁화, 그리고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이라고 하는 전제주의적 체제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이라고 하는 '공화주의'이며, 인간미 넘치는 체제의 의해 대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1) 아무리 강고한 자본주의체제라 하더라도 세상은 인간중심의 사회주의체제로 변화.발전한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착취와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인정미 넘치는 체제'라고 설정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마르크스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고대 동양에서도 국가사회주의 형태의 통치체제도 역사로 확인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는 것'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정미 넘치는 체제'로 '공화주의'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나라가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공공성을 본질로 보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현실처럼 소수 지배자들의 횡포와 이윤추구를 위해 사회 공공성을 포기하는 나라는 더 이상 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기에 바꿔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르크스 또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는 목표에 평생을 바쳤다. 즉 ‘악마의 맷돌’2)과 같은 자본주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위험성을 알려내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사회체제로서 사회주의로 가야하며, 사회주의 또한 고정불변이 아니라 민중들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변화.발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공공성이 지극히 강화되는 인정미 넘치는 공화주의도 가능하며 종국에는 자유의 왕국에 이른다고 했다. 비로소 자유의 왕국에 살 자격이 있는 자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전면적으로 자유로운 자들”이라고 하였다. 결국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없는 노동자가 아니라 목적의식을 가진 똑똑한 노동자들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며, 악마의 맷돌을 멈추는게 노동자라고 했다. 전태일열사는 우리 노동자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믿음이고, 종교이며 신이다 공자의 위민사상은 2000년을 뛰어넘어 조선의 정도전에 의해 민본사상으로 발전했으며, 자본주의 산업화가 사회를 한국사회에, 2500년이 지나면서 전태일 열사에 의해 인간에 대한 사랑이 곧 '노동해방' 사상임을 선포했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려는 정치사상이 민본사상이라면 그 백성들이 하늘처럼 생각하는 것은 ‘밥’이다, 백성들에게 하늘은 편안하게 먹고 사는 세상을 바라이기에, 정치는 곧 백성이 먹고 사는 문제를 지상과제로 삼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중심의 사상, 대중중심의 사상, 노동해방 사상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스스로 배우고 실천으로 깨우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야 말로 2009년 부화뇌동 하는 한국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방향과 좌표를 제시해준다. 39년전 산화해간 전태일열사의 지도력은 아직도 빛나고 있으며 유훈은 어머니를 통해 살아서 움직인다. 그러기에 전태일열사는 우리 노동자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믿음이고, 신이며 종교가 되어야 한다. 전태일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 노동해방의 길이며,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는 제2의 민주노조운동,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의 민주화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이유이다. 1)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정이근 - 한울 책 P25~26) 2)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서 자본주의는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더 이상 파괴할 것이 없을 때 멈춰 설 것이라며, 무한경쟁을 통한 인간관계의 파괴와 파탄, 무제한적 과소비를 존립기반으로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악마성을 ‘악마의 맷돌’이라고 함축하여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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