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며> - 천이
 
참고문헌과 각주를 포함한 내용은 첨부한 한글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계간 시대정신에서 좋은정책포럼에서 낸 <새로운 진보의 길>에 대한 서평으로 부탁받은 글입니다.
서평에 충실하면서도, 사회투자국가론을 '사민주의자'입장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 김형기 외, 『새로운 진보의 길』- 대한민국을 위한 새로운 대안


[최병천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사민주의연대 집행위윈]
새로운 진보의 길.JPG

1. '대안의 부재 시대' - 대안 담론을 모색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500만 표 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 진보개혁진영은 대안담론에 목말라 하고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대안담론에 목말라하는 분들에게 반가운 책이다. 책은 주제별 구성에 있어서도 성실하다. 총론-정치-복지-경제-고용-교육-외교-남북관계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책의 저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던 분들이 많다. 그런 만큼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저자들 자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포함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한국에는 한 때 '제3의 길' 담론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러한 '제3의 길' 담론의 유행은 지식기반사회라는 화두와 함께 팽창했었고 이후 벤처 열풍으로 번졌다. 그리고 그것은 '벤처 거품'과 함께 꺼지기도 했다. 꺼진 듯 했던 제3의 길 담론은 노무현 정부 막바지에 '사회투자국가론'이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다시 한 번 담론의 부활을 꾀하기도 했다. 친노의 대표적인 정치인인 유시민은 『대한민국개조론』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의 책을 출판하며 사회투자국가론을 적극 수용, 설파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들 일부는 당시에 제3의 길 또는 사회투자국가론을 대체적으로 옹호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지금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2. 진보진영 대안담론의 두 가지 흐름 - 사회투자국가론과 역동적 복지국가론

민주화 이후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실패 이후,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담론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보인다. 한 가지는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흐름이다. 이들은 공공사회서비스 중심의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며 복지동맹 또는 복지정치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정책적 입장은 『복지국가혁명』(2007, 밈)으로 정리되어 출판된 바 있다.

또한 진보적 경제학계에서 이러한 입장에 가장 가까운 흐름은 '제도경제연구회' 그룹이다. 이들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직후부터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본질을 '금융유동성'에 기반한 주주가치 자본주의라고 규정하며, 미국, 독일, 스웨덴, 그리고 한국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출판한 바 있다.

민주화 이후 대안 담론의 두 번째 흐름은 영국 제3의 길 논의에 기반한 사회투자국가론이다. 이러한 사회투자국가론의 입장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임채원과 양재진으로 보인다. 임채원은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투자국가로』(2006, 한울), 『사회투자국가-미래한국의 새로운 길』(2007,한울)이라는 책을 통해 사회투자국가 담론에 주도적으로 참석했다. 양재진 역시 『사회정책의 제3의 길 - 한국형 사회투자정책의 모색 』(2008,백산서당) 등을 비롯한 각종 논문을 통해 사회투자국가론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좋은정책포럼에서 발간한 『새로운 진보의 길』(이하 '본서')은 필자 마다 약간씩 견해를 달리하지만 양자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유럽의 '제3의 길'을 참조하여", "과거의 발전국가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한국형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주화 이후, 한국 진보진영의 대안담론은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론(='역동적 복지국가론')과 사회투자국가론이 서로 각축을 벌이되, 그 중간쯤에 위치한 분들의 새로운 모색이 참여하여 상호 소통하며 경쟁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3. 『새로운 진보의 길』의 주요 내용 - 현실 인식과 평가의 지점

본서의 전반적인 흐름을 요약하면 △현실인식 △평가 △대안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본서 전체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현식인식은 세계 자본주의의 큰 변화 흐름으로 흔히 지식정보화사회라는 말로 표현되는 '지식기반 자본주의'라는 흐름과 세계화라고 표현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현상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역동적 복지국가론)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마도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다만, 역동적 복지국가론 세력과 사회투자국가론 세력의 사이에는 제3의 길에 대한 평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한국사회의 대안적 비전에 대한 부분에서 견해가 다르다.

본서의 필자들은 지식기반자본주의와 세계화라는 커다란 상황 인식하에서 세계정치 차원에서 보자면 '제3의 길'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하고 있으며, 한국 정치 차원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본디 대안이란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대안을 검토하기에 앞서 이들의 평가를 잠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제3의 길에 대한 평가는 필자 간에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김호기의 경우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호기는 제3의 길을 하위유형으로 영국노동당의 '시장지향적' 모델, 네덜란드의 '시장의 합의지향' 모델, 스웨덴의 '개혁된 복지국가' 모델, 프랑스의 '국가주도 노선' 모델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세계화에 대응하여 유럽 정치가 제3의 길로 '수렴'되었다는 다소 과감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서유럽 정치지형에서 "제3의 길을 실패한 기획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다.

또한 김호기는 제3의 길 정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생산적 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평가한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혼합모델이고 한국적 변형이기는 하되, 대체로 생산적 복지와 일치했다고 평가하며, 노무현 정부의 경우 성장과 복지의 이중전략으로 갔어야 했는데 성장 중심 모델에 경도되었다고 평가한다. 김호기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평가를 보면, 다분히 명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제3의 길로 볼 수도 있고,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고, 성공한 측면도 있고, 성공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말이야 맞는 말이겠지만, 이러한 다소 애매한 평가 속에서 어떤 명확한 대안이 제출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반면 제3의 길과 사회투자국가론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이는 김윤태이다. 김윤태는 제3의 길의 문제의식을 넓은 의미에서 '사민주의의 현대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김윤태는 제3의 길이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지속적인 경제호황, 고용 확대, 공공투자 증가, 아동과 노인빈곤의 감소"에 긍정적이었던 반면, "사회의 전반적 불평등은 증가했으며, 시장과 기업의 힘이 사회와 정치에서 지나치게 커졌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제3의 길 정치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매우 뼈저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김윤태는 특히나 노무현 정부 평가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진보적 정책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라고 보며 노무현 정부 취임 직후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장하던 '2만불 시대'를 선언하며 성장 중심 모델로 기울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노무현 측근들이 노무현 정부의 일부 정책에 대해 "역사적 업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이러한 과도한 평가는 자신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의 표현에 불과하다"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또한 노무현 정부 실패 원인을 소통실패와 정책실패로 구분하며, 그중에서도 정책의 실패가 근본 문제였음을 환기한다. "복지확대, 삶의 질 향상과 같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정책보다 탈지역주의, 정치개혁 등 '정권이 원하는 정책"에 집중했다고 비판한다.

4. 『새로운 진보의 길』의 주요 내용과 간략한 비평

이제 본서에서 다루고 있는 대안적 담론들의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책의 특징 자체가 분야별 공동 집필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합의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각자의 입장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김형기의 경우, 현 단계의 시대정신으로 "사람중심의 그레이트 코리아 건설"을 제시한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세계7대 강국', 정동영 후보는 '위대한 한반도 시대', 그리고 문국현 후보의 경우 '위대한 대한민국'을 내세웠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대외적으로 강국이 되기를 원하는 국민대중의 여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통일한국-분권한국-글로벌한국을 대안적 방향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김형기의 대안은 다분히 '국가주의적' 성격을 갖지 않나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모범적인 나라로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그레이트'한 강대국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가 복지, 평등, 연대 등의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호기의 경우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성장, 일자리, 양극화, 중소기업, 자영업, 교육 등의 이슈는 민주화가 아니라 세계화에 더 밀접히 연관된 쟁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것이 과연 진보진영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세계화는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이라기 보다는 '객관적 제약조건'의 측면에서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노무현 정부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했던 김윤태의 경우 대안에 있어서도 보다 선명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역갈등보다 빈부갈등을 더 중요한 문제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미국 루즈벨트 정권의 '뉴딜연합'처럼 전국적 차원에서 '복지연합'에 기초한 계층연합의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관심을 가졌던 지역갈등 문제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같은 방식이 아니라 복지연합을 통해 "아래로부터 영남의 중산층과 노동자와 연대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연합을 진보개혁진영의 대안적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본서에서 이태수 역시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제3의 길의 '사회투자국가론' 입장과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에 기반한 '역동적 복지국가론' 사이의 입장을 조화시키려는 흐름으로 양재진은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론'"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김윤태-이태수-양재진은 모두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적 담론으로 '복지정치연합'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부적인 점에서야 차이가 있겠지만 이러한 입장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동맹'에 사실상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앞선 논의들이 제3의 길의 연장선상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사실 책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논쟁적' 내용을 던지고 있는 부분은 임혁백의 글이다. 임혁백(고려대, 정치외교학)의「한국의 대국가전략」이라는 글은 견해의 동의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이라는 책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글일 듯 하다.

임혁백의 논지는 '한미동맹 격상론'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그리고 그 근거도 충분히 토론될 여지가 있다. 임혁백이 밝히고 있는 근거는, 첫째,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과 일본은 '영토적 야심'이 있는 반면, 미국은 영토적 야심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 대북 포용정책을 위해서라도 미국의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강한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과 일본의 평화를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혁백의 문제의식에는 전체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대한민국 진보는 어떻게 봐야 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다. 그간 진보진영은 한미동맹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미국 헤게모니 약화라는 세계적인 환경변화에서 미국, 중국, 일본의 관계를 고민하는 외교 전략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향후 백가쟁명이 이뤄질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5. '사민주의자'가 보는 '제3의 길'과 '노무현 정부' 실패의 본질

본서의 본질적 취지는 민주화 이후 '대안담론'의 모색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입장과 저자들의 입장의 구분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생산적' 서평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할 듯 하다. 크게 두 가지 지점만 짧게 지적하기로 하자. 첫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실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영국적' 맥락의 사회투자국가론을 '한국적' 맥락을 무시하고 수입한 것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여기에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한국 지식인들의 책임 또한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째, 본서의 저자들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미식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담론에는 적극적인 모습이었지만,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대안담론에는 다소 무관심한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이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6.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의 진짜 본질 - '영국적' 사회투자국가론의 '한국적' 수입

첫째, 제3의 길의 '영국적' 맥락과 '한국적' 맥락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필자는 세계 사민주의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김윤태 등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제3의 길로 '수렴'되었다는 김호기 등의 주장은 많이 나간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토니블레어가 주도한 제3의 길은 '영국적' 맥락하에서 엄격하게 이해해야 한다. 스웨덴 사민당과 LO(스웨덴 생산직 노조)가 주도한 스웨덴 사민주의가 다수자 정치연합에 기반하여 '국민과 함께하는 사민주의'라는 특징을 가졌던 것과 달리 영국노동당은 조직노동의 이익과 국민대중의 이익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영국노총당'의 성격을 강하게 가졌다.

역사적으로 노조가 만든 당, 블럭투표제, 노조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점, 국유화 역시도 효율성과 공공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노조 보호' 차원에서 진행된 측면이 많았다. 심지어 1974년 보수당 히드 정부와 1979년 노동당 캘러헌 정부는 노조의 강력한 파업으로 정권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또한 1970년대 대불황이 '공급측' 경제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요측' 정책처방인 케인즈주의적 처방을 남발했다. 이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하며 노동당 정부 시절인 1976년 IMF 구제금융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영국적 맥락'에서 비로소 대처의 연속집권에 대한 국민적 지지기반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토니 블레어의 'New노동당'이 수행했던 각종 조치들도 이해할 수 있다. 블록 투표제의 해체, '노총당' 이미지와의 전략적 거리두기, 국유화 편향에 대한 노선 수정, 케인즈주의적 편향에 대한 공급측 요인의 강조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런 측면에 한해, 제3의 길이 세계 사민주의 운동에 미친 긍정성이 있다면, 사회투자적 공급측 요인의 강조, 기업 및 기업가의 재발견, 국가경쟁력과 지속가능한 복지체계의 관계에 대한 재환기, 과도한 결과의 평등 논리에 대한 자기성찰 등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본래 하나의 이론과 사상은 그것이 실천을 지향하고 있을수록 시대적 '맥락'을 갖고 있고, 자기 시대의 논적(論敵)을 상정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투자국가론은 영국적 상황에서 당연히 '자유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맥락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영국이 아니다. 한국적 현실은 영국적 맥락과 전혀 다르다. 한국은 NHS(국민보건서비스)도 없고, 사회보험도 사각지대 투성이이고, '복지병' 또는 '개인책임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지의 부재'와 '개인 책임의 과도함'으로 고통 받고 있다. 또한 노동정치 과잉이 아닌 노동정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다. 오죽하면 강준만은 '각개약진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김호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생산적 복지에 관해 제3의 길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필자 역시 김호기의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정부 10년이 서민대중의 '정치적 엄호'를 받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영국노동당의 정책이니 왠지 좌파적 냄새라고 착각되지만, 그 내용은 '자유주의적' 맥락을 분명히 갖고 있는 사회투자국가론을, 보편적 복지라고는 전혀 없는 '자유주의 과잉 사회'인 한국사회에 직수입한다면, 그것은 분명 '좌파적 언술'의 '자유주의 강화 프로젝트'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좌파 신자유주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렇게 볼 때,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은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 혼란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영국적 맥락의 이론을 한국적 맥락에 직수입했던 민주당 및 열린우리당과 가까웠던 한국 지식인들의 지적(知的)인 '국적 불명'의 비극을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와 같이 영국적 맥락과 한국적 맥락을 구분한다면, 케인즈주의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틀렸다. 한국의 경우 양재진의 주장처럼 '사회투자형' 정책은 매우 중요하지만 1970년대 영국과 달리 케인즈주의의 과잉이 아닌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유효수요 창출'과 '적극적 금융규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케인즈주의의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이러한 한국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7. '북유럽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화려한 부활 - 유연안정성 체제

둘째, 북유럽 사민주의를 마치 시대적 소멸시효가 다한,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듯한 관점이 과연 타당한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김형기는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의 한국적 도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형기는 세 가지 논거를 든다. ①한국의 경우 북유럽과 달리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역량이 취약하고 ②사민주의 모델은 국민국가 전성시대와 대량생산 시대에나 적합했고 ③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조차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들에서 슘페터주의적 노동연계국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이 과연 타당한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한국의 학계는 흔히 스웨덴 모델을 '권력자원'으로 환원시키는 이론적 경향이 있는데, 높은 노조조직률 등은 스웨덴 사민주의 정치의 '결과'였지 결코 '원인' 또는 '초기 조건'이 아니었다. 스웨덴에서 사민주의 정치가 본격화되던 192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다. 노조 조직률도 영국보다 낮았다.

둘째,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이 국민국가 전성기와 대량생산 시대에나 적합하다는 지적도 사실관계가 다르다. 조영철(2007)은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에 입각하여 미국, 독일, 스웨덴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9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적 성과를 실증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 독일식 라인모델, 북유럽식 노르딕 모델로 분류했는데, 경제성장률, 고용성과, 노동생산성, 소득불평등과 삶의 질 영역 모두에서 90년대 후반 이후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은 압도적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후반 이후 북유럽식 노르딕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안정성 체제'로 요약된다. 유연-안정성은 기업단위 유연성은 높지만 사회적 안정성 역시 높은 체제이다.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과 독일식 라인모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복지 지출 체계에서 드러난다. 독일식 라인모델은 고용경직성이 높고, 사회복지 지출이 '고용과 연계된' 이전 지출 중심이다.

반면 북유럽식 노르딕 모델은 고용 유연성이 높고, 보편적 복지에 기반한 '사회서비스' 중심의 사회복지이다.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이를 매개하며 '공급측' 투자를 활성화하되,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마치 박정희식 발전국가가 자본 투자의 리스크를 국가 및 사회가 책임지는 '자본위험의 사회화'를 통해 고(高)투자 → 고(高)위험 → 자본 위험의 사회화→ 고(高)성장을 했던 것처럼, 90년대 후반 이후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지식기반 사회라는 환경변화를 활용하여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가 직면하게 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노동위험의 사회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高)투자 → 고(高)위험 → 노동 위험의 사회화 → 고(高)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은 90년대 이후 화려하게 부활하며 '세계화' 시대에도 국가경쟁력, 평등, 사회복지의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그렇기에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의 시효가 끝났다는 김형기의 판단은 좀 더 재고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북유럽 사민주의조차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서 슘페터주의적 근로연계국가로 전환했다는 김형기의 지적이 타당한지 살펴보자.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러한 오해를 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사실관계가 다르다. 1950년대 성립된 '스웨덴 모델'의 전형으로 알려진 렌-마이드너 모델은 '케인즈주의적 편향'과의 투쟁으로 형성된 것이다.
LO(스웨덴 생산직 노조) 연구소의 경제학자였던 렌과 마이드너는 1951년 LO대회에 『노동조합 운동과 완전고용』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1956년 사민당 당대회를 통해 정부 정책의 핵심 축으로 채택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렌-마이드너 모델'이라고 알고 있는 연대임금제-적극적 노동시장의 정책 조합이다. 그리고 그것은 김형기의 지적처럼 단순하게 결과의 평등만을 지향한 정책이 아니라 철저하게 노동친화적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으로 설계된 것이며, 설계될 때부터 '공급중시' 경제정책이었다.

다만 스웨덴 사민당의 공급중시 경제정책과 사회투자국가론의 공급중시 경제정책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공공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에 기반한 사회복지정책의 유무이다. 북유럽 사민주의의 경우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양 날개가 되어 노동시장 유연성을 떠받치고 있다. 반면, 사회투자국가론의 경우 '보편적 복지'에 기반한 사회복지정책을 병행하지 않으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만을 도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유연성은 제고되지만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의 경우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산업구조 고도화를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경우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산업구조 고도화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불가피하다.

8. 사민주의와 복지국가의 '정치공학적' 본질 - '다수자 정치연합'과 '복지 동맹'

사회투자국가론의 논리에 따르면 가장 '영국적인' 복지제도의 전형은 NHS(국민보건서비스)일 것이다. 그러나 NHS는 급진적 신자유주의자였던 대처도, 제3의 길 주창자인 토니 블레어도 부분적인 손질을 했을 뿐, 기본 뼈대를 바꾸지 못했다. 그것은 NHS가 가장 보편적 복지였으며, 가장 '영국적'인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NHS에 대한 서민대중의 '정치적 엄호'가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복지국가 유형론으로 유명한 에스핑 안데르센은 스웨덴 사민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다수자 정치연합'을 들었는데,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복지국가의 '정치공학적'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북유럽의 경우 조세 부담율이 가장 높지만 '보편적 복지'에 입각해서 중산층-서민층의 복지동맹이 이루어져 복지저항이 별로 없는 반면, 미국의 경우 조세 부담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지만, '잔여적 복지'로 인해서 복지비용은 중산층이 부담하고, 그 혜택은 유색인종 및 서민층이 받게 되는 구조로 인해서 대중운동의 차원에서 조세저항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내용적으로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고, '정치공학적'으로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복지동맹'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나 한국적 맥락에서는 그간의 잔여적 복지로 인해 복지혜택을 입은 적이 없었던 중산층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복지체험'을 갖게 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교육투자와 근로연계복지,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투자국가론은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복지정치연합'의 성사를 가로막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것은 정당차원에서 볼 때는 '정치적 복지동맹'이 아닌 중도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독자노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엄호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많으며, 유권자 차원에서는 중산층 일부와 서민층 일부에게 '잔여적' 복지 수준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다. 그것은 당연히 다수자정치연합이 아닌 '잔여적' 복지 동맹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윤태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전적으로, 그리고 너무도 절박하게 타당하다.

"1980년대 민주대연합에 참여했던 세력만이 아니라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노동조합, 시민단체를 망라한 거대한 진보연합을 강화해야 한다....(중략)....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 복지국가의 등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광범위한 세력이 참여하는 '복지연합'을 추진해야 한다. 민주화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시민권을 실현해야 한다."